름다운 * 름다운 *

 

불우한 이웃을 위해
앞장서는 록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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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뉴스그룹
(원문 영어)

 

 

데이비드 휴슨(Paul David Hewson)은 1960년 5월 10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나중에 ‘보노 복스(Bono Vox: 좋은 목소리란 뜻)’란 예명으로 알려진 그는 아마도 로큰롤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일 것이다.

보노를 리드싱어로 하는 그룹 U2(유투)가 1976년 10월 결성되었다. U2는 1987년 슈퍼스타로 부상했고 보노 역시 국제적 매체의 주요 관심 대상이 되었다. 원래부터 그는 무대 위에서 언제나 청중과 호흡하는 천부적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는 또한 이런 재능을 인도주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와 가진 중대한 회의에서부터 캐나다의 대외 원조 증가에 대한 공개 지지, 에티오피아 기근 구호 후원, 프랑스 핵 실험에 대한 서슴없는 의견 발표에 이르기까지 보노는 유명인사로서의 신분을 이용해 인권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끊임없이 불러일으켰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든 비판하든, 그를 위해 기도하든 상관없이 불우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그의 열정은 계속해 커지기만 하는 것 같다.

보노는 1984년 처음으로 사회 운동에 발을 디뎠다. 당시 그는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밴드 에이드(Band Aid)’ 활동에 동참해 아프리카의 기근을 지원할 수백만 달러를 모았다. 그는 그 이듬해에 다시 ‘라이브 에이드(Live Aid)’에서 공연했고, 2005년에는 ‘라이브 8 투어’를 기획했다. 사실 그는 1999년부터 개발도상국의 이익과 곤경에 처한 아프리카를 돕기 위한 전 지구적 캠페인에 깊이 참여해 왔다. 보노가 참여한 가장 광범위한 사회 운동은 아마도 ‘주빌리 2000(Jubilee 2000)’일 것이다. 제3세계의 외채를 청산하기 위해 기획된 ‘주빌리 2000’ 캠페인 기간 동안 보노는 이 단체의 사절로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빌 클린턴•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2002년 5월, 보노는 폴 오닐(Paul O’Neill) 미국 재무 장관과 함께 아프리카 4개국 순방에 동행했다. 그해 하반기, 보노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DATA(채무•에이즈•무역•아프리카)를 설립했다. 이 기구는 아프리카의 채무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에이즈, 그리고 안 그래도 가난한 아프리카 대륙의 주민들을 해치는 불공정 무역 규정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2005년에는 단순한 공연 게스트로 활동하는 대신, ‘라이브 8’의 기획과 홍보 부분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아 활동했다. 세계를 순회하며 10차례의 콘서트를 가진 이 활동은 다가오는 G8 정상 회담의 관심을 끌어 세계를 주도하는 8개 산업 국가 대표들에게 아프리카의 막대한 채무를 탕감해 주고 무역 규정을 개혁하고 에이즈의 성행과 같은 위기에 대해 보다 많은 도움을 주도록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보노의 가장 특별한 움직임은 아내인 알리 휴슨(Ali Hewson)과 함께 사회의식을 갖춘 패션 브랜드 EDUN을 설립한 것이 될 것이다. 아프리카•남미•인도에 기반을 두고 고용인들에게 합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건전한 사업 윤리를 실천하는 공장들과의 협력을 통해 EDUN은 다른 기업들도 개발도상국에 투자함으로써 그 나라와 그 국민들이 자립•발전할 수 있도록 돕자고 권장하는 사업계의 모델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의 인도주의적 자비심 때문인지 보노는 2003년과 2005년, 2006년에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또한 지구의 균형 있는 경제 발전을 도모하려는 노력이 아마도 그가 빌 게이츠 부부와 함께 『타임』지(紙)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노의 모든 노력은 그 자신의 말처럼, 그저 한 마디 간단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신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지 말고 신이 하고 있는 일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그 자체로 이미 축복받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