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2천 년 전에 우리를 떠났지만 그의 가르침과 영적인 에너지는 여전히 우리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을 성스럽고 올바른 사람이 되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신을 기억하도록 해줍니다. 방금 그 스승의 가르침을 좀 읽었는데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큰스승의 언어는 사랑의 언어이자 시의 언어, 천국의 언어입니다. 나는 많은 위대한 스승들이 거의 비슷한 언어로 말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같은 모국어를 썼다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방식이 같다는 말입니다. 아주 시적이고 낭만적이고 고상하며 물질적인 귀로 듣기에도 아주 즐겁 지요. 우리는 매일 이런 언어로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때로 잊어버리고 맙니다. 때로는 남들을 비교적 공격적이고 덜 낭만적인 방식으로 대하기도 하지요. 우리 모두에게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시인이나 음악가, 천사, 혹은 아주 고상한 천상의 존재처럼 됩니다. 걸어다니지도 않고 공중에 둥둥 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아닌 영혼으로 숨을 쉬고, 두뇌가 아닌 가슴으로 생각하며, 사랑의 언어로 말합니다. 혹은 말조차 안 하지요. 때로는 말하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두 개의 마네킹처럼 앉아서 손을 맞잡고만 있지요! 사랑에 빠진 두 사람에 대한 농담이 하나 있어요. 어느 커플이 사랑에 빠졌는지 알려면 관찰해 보면 안다고 합니다. 그 커플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마냥 거기 앉아서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손을 맞잡거나 잡지 않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눈을 들여다보며 함께 앉아 있지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아주 행복해합니다. 하지만 두 남녀가 앉아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면 연인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케찰코아틀(Quetzalcoatl) 스승도 침묵에 대해 많이 말했습니다. “침묵하라. 그러면 빛을 보고 내면의 음악,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가 한 말입니다. 그는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지 마라. 그것은 알맹이가 없는 공허한 말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고대 스승들이 한 말을 똑같이 따라할 수는 있지만 내면에 영적인 깨어남이 없다면 그 말은 공허한 것입니다. 똑같은 말로 들리겠지만 그 말은 시적으로 사랑이 스며들지도 않았고 신의 축복의 힘이 실리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런 공허한 말들은 우리 영혼의 가장 내밀한 곳을 깨우지 못해 우리를 고양시키도록 도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스승은 사람들에게 모르면 침묵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는 수천 년 전의 말이지만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게다가 너무나 아름답지요! 만일 우리가 매일 서로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면 제1차 세계 대전이나 제2차 세계 대전, 혹은 다른 어떤 전쟁도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없다면 침묵하는 것이 낫습니다. 가장 좋은 언어는 영혼의 언어, 내면의 목소리, 또는 내면에 있는 천국의 소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 시달려 지치고,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치느라 지치고, 정신적인 피로로 지칠 때마다, 앉아서 잠시 관음을 하면 평온함을 느끼면서 내면의 영혼을 속박하고 있던 중압감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때로 몸이 편치 않거나 오염된 환경, 또는 압박감이 심한 업무나 직업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 때도 내면의 음악, 내면의 신의 가르침, 내면의 소리에 파장을 맞추면 즉시 평온하고 편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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