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채식협회 회장과의 인터뷰
베지러브 사저/ 미국 샌프란시스코 (원문 영어)
미국에서 최초로 기록된 채식 운동은 1850년 뉴욕 시에서 열린 회의로서, 여기서 미국 채식협회가 설립되었다. (주 1) 오늘날에는 미국의 많은 도시에 자체적인 채식협회가 있는데 샌프란시스코도 예외는 아니다. 활발하고 원기 왕성한 72세의 퇴직 교사인 딕시 마이(Dixie Mahy) 씨는 37년째 샌프란시스코 채식협회(San Francisco Vegetarian Society, SFVS)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녀는 고맙게도 우리에게 짬을 내주고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나눴다. 기자:샌프란시스코 채식협회의 교육 홍보 사업은 목표에 거의 이르렀나요? 딕시: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놀랄 만한 발전을 했어요. 물론 내 바람은 전세계 모든 사람이 채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으니 그다지 좋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나아지긴 했어요. 요즘에는 ‘채식’이라고 하면 많이 알아듣잖아요. 기자: 전세계인이 채식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참 큰 포부인데요. 딕시: SFVS는 1968년에 창설됐어요. 그때 나는 이미 채식을 하고 있었지만 채식 단체가 생겨난 줄도 몰랐어요. 내가 협회에 가입했던 1969년에는 회원이 30명밖에 안 됐지요. 기자: 채식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딕시: 나는 유타(Utah) 주(州)에서 태어났어요.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온 가족을 데리고 낚시를 간 적이 있었어요. 다른 개척자 가정처럼 우리 가족도 사냥과 낚시를 했었지요. 우리 집엔 아들이 없고 내가 장녀라서 아버지는 낚싯밥을 바늘에 꿰고는 나에게 낚싯대를 쥐어 주셨어요. 우린 그걸 물에 던져 넣었고 나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낚은 물고기를 잡아 올렸어요. 그 물고기가 호숫가를 맴돌며 헤엄치는 게 보였는데 우리가 물고기를 낚시찌에서 빼어 바구니에 담자 펄떡펄떡 뛰었어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물고기를 물속에 놓아주고 싶었어요. 결국 물고기는 천천히 죽어갔어요.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물고기를 씻어서 구웠어요. 모두가 둘러앉아서 물고기를 먹었는데, 난 먹고 싶지 않았어요. 그건 내게 본능과도 같은 느낌이었어요. 아마도 나의 그런 반응은 전생의 영향이거나 내가 그때 막 우주와 파장이 맞았기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우리 가족 중엔 내가 왜 동물을 먹기 싫어하는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어머니는 무척 화를 내셨죠. 내 식성이 까다롭다고만 생각하셨지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고기를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자라면서 먹는 것 때문에 힘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고 하면서 단백질은 고기•생선•유제품•달걀에서밖에 얻을 수 없다고 했어요. 의사들도 마찬가지였지요. 고기를 안 먹으면 죽을 거라고 했지요. 나는 살아가고 적절한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 동물을 죽일 수밖에 없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나는 동물이 존재하는 것이 인간의 먹이가 되기 위해서이며 그것이 신의 계획이라고 배웠습니다. 동물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단지 제거되기 위해서란 얘기였는데, 이런 논리는 내게 통하지 않았어요. 그후 60년 동안 나는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였어요. 최근에는 불교와 선(禪), 요가를 탐구하고 있지만 전에는 ‘채식’이란 식생활이라든가 채식주의자란 말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기자: 그럼 수십 년이 지나도록 ‘채식주의자’라는 말을 못 들어 보신 거군요? 딕시: 내가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는데도 몰랐어요. 역사책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채식주의자라는 말이 없었어요! 그리고 피타고라스(Pythagoras)는 수학으로 유명하지만 그가 기원전 500년에 채식을 했고 약초를 사용해 치료를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죠. 그래서 나는 피타고라스는 알았지만 그가 채식을 했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기자:코레타 스콧 킹(Coretta Scott King)도 채식주의자였어요. 딕시: 맞아요. 저는 1956년에 유타 대학교를 졸업한 뒤 채식을 시작했는데, 당시 사람들은 채식주의자를 ‘미친 사람’으로 여겼어요. 그때는 집에서 지냈는데 채식하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1956년에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왔을 때도 난 은밀하게 채식을 했어요. 밖에서 식사할 때는 그냥 채소만 조금 먹었지요. 소란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냥 남들이 먹는 대로 먹었어요.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았거든요. 채소만 좀 먹으면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언짢게 하거나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했습니다. 나 자신을 방어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했던 거지요. 남자 친구가 몇 명 있었는데, 내가 고기를 먹고 싶지 않다고 하니까 나를 비웃었어요. 기자: 정말인가요? 딕시: 예. 그러다 1957년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나서야 삶이 변했어요. 어느 날 데이트를 했는데, 그가 고기가 든 식사를 준비하기에 그냥 먹었어요. 그러다 나중에 내 느낌을 말했지요. 얼마 후에 내가 정말 고기 먹는 걸 싫어한다고 하자 그는 미리 얘기하지 그랬냐며 정말 화를 냈어요. 그는 “당신이 그렇게 느낀다면 그렇게 해야 마땅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나는 그와 결혼했지요. 사실 처음 채식을 시작할 때 나는 수명이 짧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반인들처럼 오래 살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나의 신념에 충실한 삶을 산다면 살아 있는 동안은 더 행복할 테니까 조금 일찍 죽는다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지요. 1969년에 샌프란시스코 채식협회를 발견하고 다른 채식주의자들을 만났을 땐 너무 기뻤어요. 1970년에 SFVS의 부회장이 되었고 『채식 소식(Veg News)』이라는 SFVS 소식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1975년에 SFVS의 회장이 되어 1996년에 회장직에서 퇴임했는데 이사회의 일원으로는 남았습니다. 그리고 2000년에 여건상 다시 SFVS의 회장직을 맡게 되었어요. 그저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고 가능한 한 채식을 많이 홍보하고 싶습니다. 올해 SFVS는 10월 1일과 2일에 제7회 ‘세계 채식의 날(World Vegetarian Day)’ 행사를 개최했어요. 존 로빈스(John Robins)와 하워드 리먼(Howard Lyman: 『나는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는가[The Mad Cowboy]』의 저자) 등 많은 이들이 참석했어요. 이런 활동을 할 때는 기분이 정말 멋집니다. 마치 잔치 같지요. 개빈 뉴섬(Gavin Newsome)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샌프란시스코 내의 채식 활동을 지지하고 있고 올해 10월 1일을 샌프란시스코 ‘세계 채식의 날’로 다시 한 번 선포했습니다. (주 3) 기자: 마지막으로 딕시, 칭하이 무상사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딕시: 내년 샌프란시스코 ‘세계 채식의 날’에 오셔서 강연해 주시길 청합니다. 또한 SFVS가 ‘대안적인 삶’ 쇼핑백을 배포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양면에 각각 영어로 된 전단 내용과 유명 채식인 명단이 인쇄된 종류로요. 또 한 면은 영어, 다른 면은 스페인어나 중국어로 된 것도 있었으면 합니다.
인터뷰 기자 주: 황금시대 3년(2006년) 6월 23일, 어빙 가(Irving Street)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박람회(San Francisco Asian Fair)’에서 우리 협회 샌프란시스코 센터 부스를 방문한 개빈 뉴섬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대안적인 삶’ 전단을 가져가며 집에 가서 읽어 보겠다고 말했다.
각주 주 1. http://www.ivu.org/congress/1850/convention.html 주 2. http://www.sfvs.org 주 3. http://www.sfvs.org/wvd/forms/WVD_Proclamation.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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