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은 스승의 생활경

 

진정한

포모사 시후 장주 (원문 중국어)

나는 지금도 스승님께서 해 주신 농담을 담고 있다. 암소 한 마리가 연못에서 목욕하고 있을 때 둑 위에 앉은 작은 쥐 한 마리가 계속 나오라고 하자, 마침내 암소가 물에서 나와 왜 그러냐고 묻자 쥐가 대꾸했다. “자네가 비키니 수영복을 입었나 안 입었나 보려고!”

이 농담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남겨 주었다. 왜냐하면 극소수의 사람만이 스승님의 한없는 사랑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종종 우리의 편협한 마음으로 깨달은 스승의 행동을 가늠하고 재어본다.

중생들의 갈망에 대한 스승님의 뛰어난 민감도는 ‘그들이 느끼는 바로 그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91년, 필리핀의 피나투보(Pinatubo) 화산 폭발 소식이 전세계로 퍼지기도 전에 스승님께서는 이미 마치 그분의 몸이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극도로 초조해 하셨다. 스승님의 ‘레이더’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언제나 ‘켜짐’ 상태이다. 1995년 고베(Kobe) 지진이 발생한 뒤, 스승님의 구호팀을 일본으로 보냈다. 비록 그 팀이 이미 밤낮으로 계속 일하며 많은 구호 물품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냈지만 스승님은 여전히 그 팀의 누군가에 전화를 해서 왜 그들의 일을 하지 않는지 물었다. 나중에 그들은 지진 피해자 가운데 어울락 난민이 있었고 그들이 마음속으로 스승님에게 도움을 청했음을 알았다. 이들은 일본에서 신분이 없어서 정부로부터 원조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스승님이 초조해 한 것이었다. 구호팀이 마침내 이 사람들을 찾아내고 도움이 필요한 그들이 만족스럽게 비상 물품을 받고 나서야 스승님께서는 그들의 임무가 마무리됐다고 하셨다.

정말 극소수의 사람만이 스승님이 모든 중생을 위해 비범한 방식으로 돈을 쓰신다는 것을 이해한다. 스승님에게 있어서 돈은 단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스승님께서는 오랜 옛날 황금 시대에 사람들은 개인적인 필요에 따라 필요한 물품을 교환하거나 나눠 썼다고 하셨다. 그들은 오늘날과 같은 돈이 없었다고 했다. “인간이 돈을 갖기 시작한 뒤로 물건 갖기가 더 힘들어 졌어요. 하여튼 우리가 돈을 원조와 자비의 목적으로 쓴다면, 이것 또한 아주 유용합니다. 이 세상이 이 화폐 개념을 도입했으니, 이를 따라야겠지요(칭하이 무상사/ 2000. 5. 5. 포모사 타오위엔. [원문 중국어]).”

중생들이 필요로 할 때면 스승님은 언제나 한 푼도 남기지 않고 기부한다. 범부와는 달리, 자신의 안위나 이익은 결코 개의치 않는다. 시간•장소•득실•부와 명예와 상관없이 그저 타인의 절실한 소망만 고려하고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는다. 우리가 스승님의 무아의 행동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으며 깨달은 스승은 언제나 자비가 돈보다 우선으로 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내 개인적인 깨달음은 우주의 움직임이 우리 육신의 움직임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모든 피가 심장으로 통할 때 모든 내장기관들은 그 귀한 피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궁금해한 적이 있을까? 심장은 자기가 위대하다고 생각할까? 마찬가지로, 스승님께서는 자신을 그저 도구로 생각하신다.

 

 

스승님 자신은 아주 검소한 분이다. 예를 들어, 자신은 최대한 종이 앞•뒷면을 사용하고 먹다 남은 목감기약 반쪽은 보관해 두었다 나중에 드신다. 24시간 계속 전기에 꽂아두는 전기 보온병 대신 일반 주전자를 쓰신다. 혼자서 쓰는 것이라면 그것이 더 에너지를 절약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사람이 같이 쓴다면, 어느 쪽이 더 에너지 소비가 낮은지 알아보도록 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스승님의 외적으로 호화로운 차림에 눈썹을 추어 올린다. 어떤 때는 이런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승님은 여러 방면에 재주를 지녀 갖가지 아름다운 것들을 창조하게 한다. 그분이 한 번이라도 이런 차림을 즐겼을까? 그분에게 옷차림은 공연예술가와 같이 대중을 즐겁게 하고 이 세계의 미적 감각과 예술에 이바지한다. 공연이 끝나면 스승님은 가능한 한 빨리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신다. 스승님은 우리가 영적 수행에서 논쟁적인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우리는 평범한 삶을 살면서 영적 수행을 할 수 있고 누더기를 입거나 산에서 수행하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스승님처럼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분은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분의 모든 것은 우리 것이다. 심지어 한 번도 그분의 것이 아니었던 ‘것’도 말이다. 이것들은 언제라도 다른 중생을 돕기 위한 자선 활동을 위해 팔릴 것이다. 그분은 진실로 자신의 모든 재산과 자신을 남을 위해 바치신 분이다. 그분의 제자들이 그런 지극한 사랑으로 스승을 따르는 것도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의 영적 진보 외에도, 그분의 몸소 보여준 가르침이 모두의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